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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 5월 10일
  • 2분 분량




nine kites and invisible lines 2021
nine kites and invisible lines 2021


<장면들> 제 12 장 * 수수께끼




내가 자란 곳, 나의 고원처럼 여겨지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어릴 적 본 풍경이에요. 


지리산의 바위, 은빛 세숫대야

아기 부처 어깨 위로 떨어지던 물방울

할아버지가 다친 손으로 과일을 깎고

짚을 엮어 복조리를 만들던 모습.

그 자체로 온전하고 완전했던 손의 율동.


그 장면들이 씨앗이 되어

내 안에 심어지고...

많은 것들이 피었음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엄마 손
엄마 손

물방울과 함께 걷는 자를 위한 명상방
물방울과 함께 걷는 자를 위한 명상방


제게 요상한 ‘창’이 되어주는 존재들도 있어요.

이 존재들은 하나의 세계, 벽을 허무는 존재처럼 여겨집니다.

저의 창작물에 자주 등장하지요.


신발, 의자, 귀 




단편 다큐멘터리 <배자몽> 2014
단편 다큐멘터리 <배자몽> 2014
사진집 <a room of la habana> 귀 "this is a door" 2019
사진집 <a room of la habana> 귀 "this is a door" 2019


특히 ‘귀’의 이미지는 제게

“보이는 것보다 선행하는 것, 분절되어 있으나 완전한 것”을 상징하는 오랜 표상이었습니다. 


어쩌다 ‘귀’를 이렇게 여기게 되었을까요? 


처음에는 그저 떠오르는 대로 작업했고 

역시 나중에 답을 알게 되었어요. 



 

사막, 의자, 신발 그리고 귀 ... 2020
사막, 의자, 신발 그리고 귀 ... 2020



몇 년 전 어느 날, 섬광처럼

‘연’을 만들어 날려야겠다는 큰 이끌림을 느꼈어요

내면에 있던 어떤 것의 발현,

‘연’이 ‘귀’를 나타내는 것임을 곧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2021
2021


어릴 적, 아빠가 들려준 ‘귀 무덤’ 이야기.  

탄압받던 시절, 무고한 사람들의 잘린 귀가 묻힌 무덤이 가까운 지역에 있다고요. 


그 이야기를 들은 어린 저는, 종종 상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 귀들이 들을 수 있었을 소리들

묻힌 귀들을 꺼내 자유롭게 하기

유영하는 귀가 ‘가느다란 실 형태의 소리’를 만나는 모습 ... ...







“연”, 날고 있지 않아도 '비행 가능성'이 잠재된 존재.


묻힌 귀들에 연이라는 형태를 입혀

그것이 하늘을 누비는 장면을 보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드러났구나.





탐구   2020 - 2021
탐구 2020 - 2021


이 무렵 작업하던 ‘birth’와도 교차하는 지점이 있었어요. 

순간과 순간이 맞닿는 감각을 모래로, 또 실로… 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어느 형태로 느끼며

그 감각을 birth로 표현했지요.





birth 스틸컷
birth 스틸컷



귀, 연, 모래는 사실 하나인 것.

그 감각들, 하나의 모래알, 모래알, 모래알이 거대한 사막을 이룬 모습. 

드넓은 사막 위를 나는 연(귀)의 장면을 오랜 시간 꿈꿨습니다.








birth를 완성하고 그토록 그리던 사막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연을 띄우고 birth의 장면을 놓아보았습니다.

이 또한 영화를 만드는 과정처럼 느껴졌어요.






어느새 연의 꼬리가 사라져있다 2024
어느새 연의 꼬리가 사라져있다 2024


동트기 전,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하얀 연, 하얀 귀가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보며 느꼈던 마음은

말로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birth 로케이션에서 2024
birth 로케이션에서 2024




이렇게, “제 12 장” 의 장면을 소개합니다. 

저녁 하늘을 헤엄치는 연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장면들>을 봐주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새로운 연을 만들었습니다.

감색으로 염색된 우리나라의 한지로 몸을,

그 아래 ‘귀’ 모양의 종이, 미색의 긴 꼬리를 달았습니다. 


청명한 저녁 하늘, 금성과 목성 사이로 연이 납니다. 

여기에 작은 기도를 실었습니다.










어릴 적 마음에 새겨진 장면들이

스스로 변형하며

이런 모양으로 저를 자라게 했습니다.

스스로를,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도요...!





지리산 할머니 집 앞 계곡 바위
지리산 할머니 집 앞 계곡 바위




나의 고원으로부터, 사실 모두 하나인 것
나의 고원으로부터, 사실 모두 하나인 것




긴 시간을 사이에 둔 단어와 장면들이 훗날 하나로 이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숨어있던 의미를 발견하는 것.

그 과정에서 크고 조용한 환희를 느낍니다.


이 모든 여정이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수수께끼 같습니다.



지금 이어가고 있는 작업들에서는 또 어떤 모양으로 드러날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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